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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용인, 이학철 기자] “농구가 늘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프로 입단 후 첫 비시즌을 보내고 있는 곽동기가 누구보다 성실한 태도로 훈련에 임하며 자신의 기량을 끌어올리고 있다.파워볼게임

곽동기는 지난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3순위로 KCC의 부름을 받았다. 192.5cm의 작은 신장이지만 궂은일에 능한 유형이라는 점과 성실한 태도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프로에서의 첫 비시즌을 보내고 있는 곽동기는 “아무래도 프로다보니 되게 체계적으로 관리를 해주시는 것 같다. 내 몸 상태에 대해서 확실히 잘 알고 끌어올릴 수 있는 것 같다. 현재 동료들과 함께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 몸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근황을 알렸다.

이어 곽동기는 “형들이 다들 너무 잘해주셔서 빨리 팀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송)교창이도 생활부터 시작해서 모든 부분에서 잘 챙겨줬다. 또 농구적인 면에서 (이)정현이 형이 옆에서 되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시면서 도움을 많이 주신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며 KCC 생활에 만족감을 표했다.

이처럼 KCC에 빠르게 녹아든 곽동기는 남다른 인기를 자랑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최근 KCC가 열었던 랜선 팬미팅에서도 노래를 부르며 끼를 과시하기도 했다. 또한 훈련장에서는 누구보다 성실한 태도로 전창진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곽동기다.

곽동기는 “팬미팅이 처음이었는데 노래를 부르다가 긴장을 해서 웃음이 나왔던 것 같다. 팬 분들과 소통하는 것이 되게 재밌었다. 관심 있게 봐주셔서 감사하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또한 곽동기는 전창진 감독에 대해 “처음에 왔을 때 면담에서 되게 자상하게 말씀해주셔서 아버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농구를 알려줄 때는 무서우실 때도 있지만 되게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잘 되지 않았던 부분이 어느 순간 되는 것이 보이면 농구가 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시즌 곽동기는 1군 무대를 밟지 못했다. 대신 D리그에서 평균 9.5점 5.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경험을 쌓았다. 그런 그는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을까.

곽동기는 “처음에는 형들 밑에서 궂은일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또 중학생 때부터 함지훈 형의 팬이었다. 동영상도 거의 다 챙겨봤다. 골밑에서 여유롭게 하시는 모습을 닮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지난 시즌 NBA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아데토쿤보.[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 미국프로농구(NBA) 정규리그 개인상 수상자를 시즌 중단 전 성적만으로 뽑기로 하면서 ‘그리스 괴인’ 야니스 아데토쿤보(밀워키 벅스)의 두 시즌 연속 최우수선수(MVP) 수상이 유력해졌다.파워볼

AP통신은 18일(이하 한국시간) “NBA의 이번 시즌 정규리그 MVP를 비롯한 개인상 경쟁은 끝이 났다”고 보도했다.

AP통신에 따르면 NBA 사무국은 이날 NBA 소속 30개 팀에 공문을 보내 올 시즌 정규리그 개인상 수상자 선정 시 이달 말 시즌 재개 후의 성적은 반영하지 않으며 투표도 시즌 재개 이전에 마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정규리그 MVP뿐만 아니라 올해의 신인, 수비수, 감독, 식스맨 등 개인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시즌이 중단된 3월 12일까지의 성적만으로 수상자를 가리게 됐다.

NBA 사무국은 30개 팀 선수와 감독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고자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NBA는 오는 31일부터 전체 30개 구단 가운데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있는 22개 팀만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디즈니 월드 캠퍼스에 모여 시즌을 재개할 계획이다.

밀워키의 아데토쿤보.[EPA=연합뉴스 자료사진]

AP통신은 NBA의 이번 결정으로 아데토쿤보의 두 시즌 연속 MVP 수상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에서 경기당 27.7득점에 12.5리바운드 5.9어시스트를 기록하고 MVP의 영예를 안은 아데토쿤보는 올 시즌에도 리그가 중단되기 전까지 57경기에 출전해 평균 29.6득점에 13.7리바운드 5.8어시시트를 기록 중이었다.

득점·리바운드는 리그 3위에 해당한다.

아데토쿤보의 활약을 앞세워 밀워키는 53승 12패로 동부 콘퍼런스 1위를 질주 중이었다.

신인상 경쟁에서는 지난해 2순위로 지명된 자 모란트(멤피스 그리즐리스)가 1순위 자이언 윌리엄슨(뉴올리언스 펠리컨스)에게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모란트는 올 시즌 59경기에서 평균 17.6점 3.5리바운드 6.9어시스트를 기록한 반면 윌리엄슨은 무릎 수술로 데뷔가 늦어지는 바람에 19경기(평균 23.6점 6.8리바운드 2.2어시스트) 출전에 그쳤다.

한편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등 개인 기록 타이틀은 시즌 재개 후 성적도 반영된다.

[점프볼=서호민 기자] ‘농구계의 펠레’로 불리는 찰스 바클리가 또 한번 포틀랜드 예찬론을 이어갔다.파워볼사이트

바클리는 최근 NBA TNT가 방송사 ‘INSIDE THE NBA’에 패널로 출연해 오는 재개 시즌 자신의 예상을 이야기했다. 여기서 바클리는 포틀랜드가 재개 시즌 다크호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만약 포틀랜드가 8번 시드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다면 1라운드에서 레이커스를 꺾을 수 있을 것이다”라며 포틀랜드에 지지를 보냈다.

바클리가 포틀랜드 예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달에도 ESPN의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포틀랜드는 리그 최고 백코트 듀오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잭 콜린스와 유서프 너키치까지 돌아온다면 리그에서 그들을 이길 팀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남긴 바 있다.

한편, 포틀랜드는 리그가 중단되기 전까지 29승 37패로 서부 9위에 위치해 있다. 플레이오프 마지노선인 8위 멤피스와의 승차는 3.5경기. 리그 재개까지 2주 남짓 남은 가운데 그들은 오는 8월 2일(한국 시간) 멤피스와의 경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재개 시즌에 돌입한다.

1994년생 | 201cm | 미시건 대학 | NBA 데뷔 : 2018년

※ 주의 : 팀 던컨과 데이비드 로빈슨은 이 글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기대, 아쉬움, 발전, 그리고 도전다시…기대, 실망, 발전, 그리고 도전
정말 수비 잘하고 전국적 관심을 받을 것 같은 이름의 소유자, 던컨 로빈슨(Duncan Robinson)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림 심한 농구 커리어를 보낸 선수다. 그의 NBA 입성기는 그야말로 ‘반전’의 연속이다. 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계단을 밟은 그는 초인들의 리그, NBA에서 한가지 전문성으로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마이애미 히트의 기대주이자 ‘3점슛’의 새로운 브랜드로 떠오른 로빈슨은 NBA에서 정말로 드문 NCAA 디비전 III 출신 선수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NBA에서도 디비전 III 대학을 거쳐 올라온 선수는 찾기 쉽지 않다. 전체 슛의 88.3%가 3점슛인 이 선수는 드래프트 되지 못한 설움을 이겨내고 주전으로 올라섰다.
▲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꿈
로빈슨은 고교시절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하고, 학점도 3.55로 우수한 편이었다. 로빈슨은 굉장한 노력파로 평가받았다. 거버너스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만 해도 170cm 밖에 안 되어 출전시간을 얻지 못했지만, 하루에 1,000개가 넘는 슛을 던지면서 기회를 기다렸다. 하늘이 그 노력을 인정해준 것인지 로빈슨은 시간이 흐르면서 ‘우수한 슈터’로 평가받기 시작했고, 동시에 키도 쑥쑥 자라 주목을 끌었다. 졸업반에 198cm까지 키가 자랐고, 대학에 입학할 무렵에는 203cm가 되어 있었다. 호리호리하던 체격도 근육이 붙어갔다.
그렇지만 NCAA 디비전 I 대학의 입학 제의를 받지 못했다. 유일하게 장학금을 주겠다고 한 학교는 보스턴 지역의 메리맥 대학(Merrimack College)이었지만 디비전 I이 아닌 디비전 II였다.
로빈슨은 디비전 III의 윌리엄스 대학을 택했다. 전액장학금은 받지 못했지만, 차근차근 점프하자는 계획을 갖고 다시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마침 윌리엄스 대학은 디비전 III 전국 탑 랭킹에 올라 있었다. 2003년에 디비전 III 우승을 차지했고 2010년에도 준우승을 기록했다. 디비전 III 출신 특급 선수는 없었어도, 디비전 III를 거쳐 대형 리그 지도자가 된 사례는 많았다. 브래드 스티븐스(보스턴 셀틱스), 탐 티보듀(전 시카고, 미네소타), 존 빌라인(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NCAA 미시건 대학) 등이 대표적인 최근 사례다. 즉, 디비전 III 자체는 전국적인 관심을 받진 못했어도, 여기서 특별한 재능을 인정받으면 디비전 I 대학으로의 전학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로빈슨은 2013-2014시즌, 1학년 신분으로 무려 34.7분씩을 소화하며 팀을 결승에 올려놨다. 17.1득점 6.5리바운드를 기록하는 한편 3점슛도 179개 중 81개를 넣었다. 성공률은 45.3%. 신인상 영예도 안았다. 비록 위스콘신-화이트워터 대학에 밀려 우승에는 실패(73-75)했지만 한 시즌간 보인 활약은 디비전 I 대학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뉴햄스퍼 지역의 로컬 방송 WGAM은 로빈슨을 ‘디비전 III 역사상 최고의 1학년’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유명해진 뒤 여러 팟캐스트에 출연한 로빈슨은 당시 결승전에 대해 “39분 이기고 마지막 4초를 진 경기”라며 아쉬워 했다.)
그렇게 1학년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치자, 데이비슨 대학을 비롯해 적지 않은 디비전 I 대학교들이 기다렸다는 듯 로빈슨을 탐내기 시작했다. 이미 시즌 중반 무렵부터 로빈슨의 신상을 문의하는 스카우트들의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는 기사를 여러 매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로빈슨이 선택한 학교는 미시건 대학이었다.
당시 미시건 지휘봉을 잡고 있던 존 빌라인 감독이 로빈슨의 플레이를 보고 전액 장학금 입학을 결정한 것이다.
여기에는 스토리가 있다. 대학에서 로빈슨을 지도한 마이크 메이커 감독이 빌라인에게 제자의 경기 비디오를 보내 테스트를 요청했던 것. 메이커 감독은 웨스트 버지니아 대학 시절(2002~2007년)에 빌라인 감독의 코치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리고 그 인연으로 디비전 I 진학을 갈망하던 제자를 추천했다.
결국 2013-2014시즌 직후, 로빈슨은 꿈에 그리던 디비전 I 대학 진출의 꿈을 이루었다.


▲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1999년 LA 레이커스에서 데뷔한 데빈 조지는 디비전 III 출신 선수로는 최초로 3년 연속 NBA 우승을 맛본 선수다. MIAC 컨퍼런스라는 무명 컨퍼런스 출신이지만, 1라운드 23순위에 선발되며 새 역사를 썼다. 이에 앞서 테리 포터는 위스콘신-스티븐스 포인트 대학이라는 디비전 III 소속의 무명 대학을 나와 NBA에서 17년간 활약했다. 1985년 1라운드 24순위에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에 지명되어 소속팀을 NBA 파이널(준우승 2회)로 이끌었으며, 은퇴 후 NBA 감독도 됐다. 이처럼 디비전 III 출신 선수 중에도 분명 NBA에서 성공한 케이스는 있었다. 다만 그 사례가 디비전 I에 비해 적을 뿐이다.
디비전 II에서도 벤 월러스와 마리오 엘리, 대럴 암스트롱 등이 무명 설움을 극복하고 주전으로 등극한 예가 있다. 이들은 꿈에 도전해온 후배들에게 ‘나도 해냈어’라는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례들이었다.
던컨 로빈슨의 사례도 오래오래 기억될 만하다. 디비전 III 소속 선수가 디비전 I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전학을 간 최초의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윌리엄스 대학 선수 중 처음으로 NBA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는 밥 말랜드라는 가드였다. 1962년 드래프트 14라운드에서 시카고 제퍼스에 지명됐지만, NBA에 가지 않고 ‘IBM’에 일반 사원으로 취업했다는 기록이 있다.)

윌리엄스 대학은 로빈슨의 디비전 I 진출을 기념하며 ‘디비전 III 선수가 전액 장학금을 받고 디비전 I에 간 건 로빈슨이 처음’이라 했다. 《ESPN》도 2015년 12월 5일 기사에서 다시 한 번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NCAA 규정에 따라 로빈슨은 전학 후 첫 시즌을 뛰지 못했다. 그렇지만 빌라인 감독의 지시에 따라 경기가 있는 날에는 체육관에 함께 하며 실전처럼 연습했다. 팀 패턴을 익히고 동료들 성향을 파악하라는 의미였다. 마이크 밀러, 카일 코버 등 백인 슈터들을 이상형으로 삼았던 그는 경기가 있는 날에도 3점슛 200개 성공 루틴을 빼놓지 않았다. 동시에 디비전 I을 주름잡는 새로운 차원의 거물들에 대적하기 위해 몸 가꾸기도 빼놓지 않았다. 동료들은 로빈슨의 헌신적인 자세에 한 번, 놀라운 슛 성공률에 또 한 번 놀랐다고 전했다. 이전까지 팀 최고 슈터는 닉 스타우스카스였는데, 그 스타우스카스조차도 ‘미시건 최고 슈터는 던컨 로빈슨’이라고 인정했다.
(※ 뉴햄프셔 출신인 로빈슨은 어린 시절, 같은 지역 고교 스타였던 ‘레드 로켓’ 맷 보너를 이상형으로 삼았다고 한다. 보스턴 셀틱스의 팬이기도 해서 레이 앨런도 눈여겨봤다. 그 외 마이크 밀러와 카일 코버는 ‘이상형’을 묻는 인터뷰에서는 항상 빠지지 않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J.J 레딕 팟캐스트에 출연했을 때는 1초 머뭇거리다 J.J 레딕을 말했다. 사회생활도 3점슛만큼 깔끔하다.)

마침내 잠금 해제된 로빈슨은 2015-2016시즌에 날기 시작했다. 빌라인 감독은 상대 지역방어 깨는데 로빈슨을 활용했다. 단순히 슛만 잘 던지는 게 아니라 움직임도 좋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첫 시즌부터 로빈슨의 슈팅이 빛났다. 그는 2015-2016시즌 빅10 컨퍼런스 선수 중 3점슛 성공률 2위(45.0%)를 기록했다(1위는 미시건 주립대학의 브린 포브스, 48.1%). 성공률만 좋았던 건 아니었다. 노스웨스턴 대학과의 빅10 컨퍼런스 토너먼트 경기에서는 연장전에서 중요한 3점슛을 넣었으며, 인디애나 대학과의 맞대결에서도 승부처 3점슛을 꽂아 업셋(72-69)를 거들었다. (그 뒤에 카메론 채트맨의 위닝샷이 터졌다.)
다만 꾸준하지는 못했다. 갑자기 확 높아진 레벨에 고전한 것이다. 빌라인 감독도 로빈슨 기용을 두고 고민했다. 주전으로도 보내봤다가 다시 벤치에서 출전시키기도 했다. 2015-2016시즌에 36경기 중 27경기를 주전으로 뛰었지만, 이후 2시즌은 79경기 중 주전으로 나선 경기가 22경기 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에 대한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 안 들어가더라도 계속 던지게 둘 것이다. 슛 연습하는 장면을 보면 그런 믿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국 넣게 될 것이라는 믿음.” 대학시절, 빌라인 감독이 남긴 말이다. 대학 시절 동료였던 센터, 모리츠 바그너는 “8개를 던져 다 실패했더라도, 다음번에도 던지라고 말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슈터는 중요할 때, 팀이 필요로 할 때 하나를 넣어주면 되는 역할이다. “스스로 한계에 가두지 말라”는 좌우명을 갖고 있던 로빈슨도 잠시 찾아온 심리적 슬럼프를 잘 이겨냈고, 팀에 승리를 선사했다.

미시건 대학은 2017년 NCAA 토너먼트 16강 진출을 이룬데 이어 2018년에는 챔피언십 게임까지 진출했다. 비록 빌라노바 대학에 패해(62-79) 준우승에 그쳤지만, 특유의 슈팅으로 팀에 힘을 보탰다. 덕분에 그는 빅10 컨퍼런스 식스맨상을 수상했으며, 그 와중에 학업도 놓지 않아 올-빅10 아카데믹 팀에도 선정됐다. 그 외 두 번 다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디비전 I과 디비전 III 챔피언십에 모두 출전한 최초의 선수가 되기도 했다. (아쉽게도 로빈슨은 22분간 뛰었지만 장기인 3점슛을 하나도 넣지 못했다.)

▲ 참아온 나날 힘겹던 날
로빈슨이 미시건 대학에서 꽂은 3점슛은 총 237개. 이는 미시건 대학 역대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2미터에 정확한 3점슛을 지닌 노력파. 이 정도로 브랜딩 된 던컨 로빈슨이지만 NBA 드래프트에서는 그리 인기가 없었다. 이 도시, 저 도시 다니며 워크아웃도 가졌고 감독들도 그 슈팅과 성실함에 좋은 점수를 주었으나 정작 드래프트에서는 4학년까지 마치고 나온 백인 슈터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대학 진학 당시 그에게 장학금 제의를 준 학교가 한 곳도 없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로빈슨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로빈슨이 드래프트에 나왔던 2018년. 같은 해 드래프트에 나온 신인 중에서는 루카 돈치치, 트레이 영처럼 자리를 잘 잡은 신인들도 있지만, 오마리 스펠만(빌라노바 대학)처럼 2시즌 동안 유니폼을 3번이나 바꿔입은 선수도 있다. 메릴랜드 대학을 나온 저스틴 잭슨은 아예 NBA 구단 유니폼도 입지 못한 채 G리그를 거쳐 지금 캐나다 프로리그로 갔다.
로빈슨은 자신의 무기를 이용해 바닥부터 천천히 올라왔다.
처음 향한 곳은 NBA 서머리그다. 마이애미 히트 에릭 스포엘스트라 감독은 던컨 로빈슨에게 계약을 제의한 유일한 감독이었다. 그에게 슈터로서의 비전을 설명하고 설득한 것.
이후 로빈슨은 마이애미 소속으로 서머리그를 성공적으로 소화했다. 당시 평균 득점은 12.4득점. 무엇보다 3점슛 성공률이 63.0%로 어마어마했다. 이 활약을 발판삼아 그는 투 웨이 계약을 맺었으며, G리그 수폴스 스카이포스와 마이애미를 오가며 시즌을 소화했다. G리그에서는 33경기에서 평균 21.4득점(3점슛 48.0%)를 기록했다.
마이애미 구단은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과 일본, 중국까지도 스카우트들을 파견해두고 있을 정도로 유망주 발굴에 열성적인 팀 중 하나다. (사실 일본, 중국은 한 명이 관리 중이며 종종 KBL도 보러 온다. 그러나 주된 관심사는 그 나라에서 뛰는 미국인 선수들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이 담당자는 내게 “아시아의 어린 선수들도 지속적으로 보고서는 제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팀 운영 전권을 지닌 팻 라일리와 그의 사단은 뉴욕 닉스 시절의 앤써니 메이슨부터 시작해 브루스 보웬, 유도니스 하슬렘, 로드니 맥그루더, 켄드릭 넌 등 낮은 순위에서 지명됐거나 아예 드래프트 되지 못했던 선수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수차례 맛본 바 있다. 하산 화이트사이드가 긴 여행을 끝낼 수 있었던 배경에도 라일리 사단이 있었다.
로빈슨은 고진감래(苦盡甘來)를 꿈꿨다. “하룻밤에 다른 선수가 될 수 없기에 최고가 되기 위해 가능한 많이 해야 한다”며 말이다. 그러나 그 길은 쉽지 않았다. 로빈슨은 《어슬레틱》지와의 인터뷰, 그리고 여러 팟캐스트에서 그때 고생담(?)을 들려주었다. 수폴스 경기를 치르고 바로 다른 도시로 가서 마이애미에 합류, NBA 경기를 치러야 했는데 때로는 경기 시작 1시간 전에 도착해 전술 설명만 듣고 바로 경기에 투입된 적도 있었다. NBA 경기를 치르고 나면 다시 G리그로 내려가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 마이애미에서 딱히 경기를 오래 뛴 건 아니었다. 일명 ‘end-of-bench’ 롤(role)이라고 하는데 교체선수로 투입되어 많이 뛰어야 10분, 12분 정도 뛰는 것이다. 그 짧은 시간에 뭔가를 보이고 인정받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원정 라커룸에는 자신의 자리도 없어서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기도 했다. 스포엘스트라 감독은 “이것이 투 웨이 플레이어의 삶이다”라며 로빈슨을 독려했다는 후문.
로빈슨은 J.J 레딕 팟캐스트에서 “투 웨이 시절에는 호텔에서만 지내느라 마이애미 도시는 구경도 못 해봤다. 이번 시즌은 좀 더 도시를 둘러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 첫 시즌, 로빈슨은 웨인 엘링턴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엘링턴으로부터 급변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멘탈을 핸들링 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그렇다면 드래프트도 되지 못한 로빈슨이 수폴스에서 활약하고, 에릭 스포엘스트라 감독의 부름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전공과목인 슛을 더 발전시킨 덕분이다. 로빈슨은 방송 인터뷰에서 “NBA에서 슈터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연구를 많이 했다. 82경기를 뛸 수 있는 몸을 만들고, 공격만큼이나 수비에서 버텨야 한다는 점이 힘들었다. 기동력, 트랜지션 등 다 중요했다”고 자신의 생존기를 들려준 바 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인터뷰에서도 “G리그에서 미친 듯이 훈련했다. 스크린과 핸드오프를 이용한 슈팅 훈련을 많이 했고, 멘탈도 가다듬었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마이애미 경기를 보면 로빈슨이 득점 찬스를 잡는 과정에서 이런 움직임이 기가 막히게 잘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USA TODAY》와의 인터뷰에서는 “달리다가 멈춰서 슛을 던지는 훈련을 많이 했다. 드리블보다는 달리다가 패스를 받아 바로 던지는 연습을 주로 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혼자하지 않았다. 마이애미 지역일간지 《썬 센티널(Sun-Sentinel)》의 비트 라이터 아이라 윈더만 기자는 독자와의 Q&A 코너에서 로빈슨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로빈슨은 에릭 스포엘스트라 감독과 대화를 정말 많이 나눈다. 슛 차트를 기반으로 대화하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많이 분석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는 에릭 스포엘스트라 감독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았고, 지미 버틀러나 고란 드라기치 같은 팀내 스타들에게서도 노력과 실력을 인정을 받았다. (※ 여러 증언을 종합해보면 로빈슨은 감독, 코치, 선배 가리지 않고 질문을 많이 하는 선수로도 유명하다.)

▲ 남은 건 이제 승리 뿐
첫 시즌을 통해 해답을 찾은 로빈슨은 7kg 이상을 찌워 더 단단해진 몸으로 돌아왔다. 마이애미가 G리그가 아닌 1군 계약을 약속해준 것이 힘이 됐다. 처음에는 부상자 자리를 메우기 위함이지만 점차 팀에 없어선 안 될 선수가 됐다. 특히 버틀러와 같이 돌파가 좋은 선수들이 함께 할 때 수치가 확 올랐다. ‘코너의 제왕’이라 해도 될 정도로 좌, 우 코너에서 정확한 재미를 봤다. 기습적인 3점슛 역시 위력적. 덕분에 시즌을 치르면서 수차례 커리어하이 기록을 갈아치웠다.

다음은 2019-2020시즌을 치르면서 로빈슨이 달성한 기록들– 시즌 중단 전까지 3점슛 성공 부문 3위(1위 : 제임스 하든)- 49경기 연속 3점슛 1개 이상 성공 (프랜차이즈 기록)- 24경기 연속 3점슛 2개 이상 성공 (프랜차이즈 기록)- 3경기 연속 3점슛 7개 이상 성공 (NBA 역대 6번째)- 전 시즌보다 3점슛 230개 이상 증가 (증가폭 역대 1위)- 단일시즌 최다 3점슛 성공 기록 (프랜차이즈 기록)- 차징 유도 팀내 1위(8회)- TS%는 67.8%로 팀내 1위, 네트레이팅 7.7로 팀내 1위- 언드래프티 역대 3점슛 기록 (NBA 역대 단일시즌 1위)※ 언드래프티 역대 단일시즌 최다 3점슛 성공 기록던컨 로빈슨, 2019-2020시즌, 240개데이먼 존스, 2004-2005시즌, 225개존 스탁스, 1994-1995시즌, 217개라자 벨, 2006-2007시즌, 205개조 잉글스, 2017-2018시즌, 204개로버트 코빙턴, 2017-2018시즌, 203개
이런 누적 기록 외에 경기에 끼친 영향도 대단했다. 비록 약체 팀이긴 했지만 스승 빌라인 감독이 이끌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상대로는 2쿼터 5분여 동안 21점을 몰아치며 일찌감치 경기를 터트렸다. 이 경기서 로빈슨은 2쿼터에만 3점슛 7개를 넣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빌라인은 “어떤 면에선 정말 미웠다. 그렇지만 자랑스러웠다”라며 제자를 자랑스러워 했다.
10월 27일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전에서 21점으로 몸을 풀었던 그는 10일도 채 지나지 않아 23점(3점슛 7개, 휴스턴 로케츠 전)을 올렸으며, 앞서 말한 클리블랜드 전은 29점(전반전 3점슛 8개)을 기록했다. 커리어하이 교체 행진은 계속됐다. 12월 10일 애틀랜타 호크스 전은 ‘간 큰’ 로빈슨의 물오른 3점쇼를 즐길 수 있었다. 결정적일 때마다 3점슛을 터트리며 34득점(3점슛 10개)을 쏟은 것이다. 로빈슨이 균형을 깨는 3점슛을 넣어준 덕분에 마이애미도 중요한 시점에서 점수차를 확 벌리며 135-121로 소중한 연장승을 따냈다. 3점슛 10개는 프랜차이즈 기록이었다.

이런 활약에 대해 해설위원 제프 밴 건디는 던컨을 ‘엘리트 슈터’라고 평가했고, 보스턴의 브래드 스티븐스 감독은 ‘자신의 조건을 잘 활용하는 영리한 선수’라고 말했다.
로빈슨도 이러한 스스로의 활약에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는 미국의 잘 하는 고교생들만 선발될 수 있다는 맥도널드 올-어메리칸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디비전 I 선수들과 겨루었고, NBA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진 못했지만 서머리그를 거쳐 스타들로부터 인정받는 선수로 길을 걷고 있다.

“발전하고 싶다면 누군가 지켜보지 않는 곳에서도 노력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그 신념대로 노력해온 결과다.
로빈슨의 이러한 활약이 이제 7월 31일 재개하는 2019-2020시즌에 이어질 지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41승 24패로 동부 4위에 올라있는 마이애미는 뱀 아데바요, 켄드릭 넌, 타일로 히로 등 젊은 스타들의 활약이 기대되는 팀이다. 이 가운데 로빈슨이 시즌 내내 이어온 최고의 슛감을 보인다면 또 다른 변수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루키=배승열 기자] “아내가 나의 선택을 지지해줬다.”

지난 16일, KBL은 2020-2021시즌 심판진 구성을 발표했다. 정규 심판 18명과 수련 심판 3명으로 구성됐다. 그중 지난 시즌 전주 KCC에서 은퇴한 한정원이 심판진에 이름을 올렸다. 한정원 심판은 2013-2014시즌 신동한 심판 이후 7년 만의 KBL 선수 출신 심판이 됐다.

한정원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프로 12년 차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지난 FA 시장에서 빅맨이 부족한 팀으로부터 관심을 받았지만 결국 유니폼을 벗었다.

한정원은 “은퇴를 하고 나니 홀가분한 기분보다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프로 생활을 마무리한 것이 아쉽다”며 은퇴 소감을 전했다.

아쉬운 마음을 정리하기도 전에 한정원은 빠르게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그는 “은퇴 후 바로 여러 가지 계획을 준비했다. 그러던 와중에 심판을 지원하게 되는 동기를 얻게 됐다. 제가 아내에게 `심판에 지원해볼까`라고 물었는데 아내가 긍정적으로 이야기했고 제 선택을 지지해 줬다”고 설명했다.

오랜 프로 생활 후 심판으로 코트로 돌아오게 됐지만 나름의 고충도 이야기했다. 바로 동료들과의 관계 문제다.

한정원은 “제가 심판을 준비할 때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이후 언론을 통해 제가 심판이 된 것이 공개된 후 동료들에게 전화와 문자를 받았지만 아직 답장하지 않았다”며 “관계를 유지하기에는 서로의 위치로 인해 쉽지 않다. 이런 부분도 심판 교육 과정에서 강조된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고충이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KBL 심판은 구단, 코치, 선수들과의 만남이 제한된다. 경조사도 알리지 않고 거리를 둔다.

끝으로 “현재 신호와 동선, 로테이션을 연습하고 있다. 심판으로 포부를 말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공정, 공평 그리고 양심으로 소신껏 판정하는 심판이 되고 싶다. 그리고 농구를 좋아해 주시는 팬들 눈에 띄지 않는 심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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